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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岳山 斷想
편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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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017.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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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岳山 斷想
내 기억이 맞다면 1963년 10월 8일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어서 휴일이라, 학기 중이라도 방과 후에 길을 나선 모양이었다. 그 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아마도 청평까지는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갔던 것 같고,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가다가 종점인가에서 내려서, 이번에는 군 트럭이 지나갈라치면 흙먼지를 풀풀 날려 길가로 피했던, 소위 신작로를 또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집에 다다르게 되었다. 걸어가는데 가을 땡볕이 따가웠던 것으로 보아 해가 있을 때 도착한 것 같은데, 그 당시 교통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반나절로 이동이 가능했는지 의아하다. 친구 집이 바로 懸燈寺였다. 부친이 이른바 帶妻僧이셨던 것이다.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언질도 없어 전혀 몰랐는데 산중으로 올라오고 나니 절이었다. 모친이 차려준 맛있는 절밥을 먹고 나니 금새 어두워졌고, 전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으나 밑이 한없이 깊은 解憂所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라디오는 있어서 필리핀인지에서 아시아 농구 선수권대회에서 신동파 선수가 대활약을 한 중계를 들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등산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게 절 주위를 둘러 본 셈인데, 그 당시만 해도 산에 나무가 별로 없었고, 전쟁 후유증인지 불에 탄 나무그루가 눈에 많이 띄었다. 누구나 뱀을 싫어하겠지만 돌아다니다 크고 넓적한 바위위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인지도 모를 뱀을 발견하고 소름이 끼쳤던 것도 같다. 하여튼 그 당시는 청평과 현등사 두 단어만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나중에 홍천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춘천 가는 버스로 청평을 자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찬찬히 생각해보니 청평을 지나 첫 검문소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 길이 현리로 가는 길이고, 현등사가 강원도 현리가 아닌 경기도 현리에 있는 절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 당시 내 처지는 누구에게 말하기가 괴로울 정도로 한심하였다. 2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어렵게 서울에서 자리 잡았던 부모님이 두 여동생과 함께 대구로 다시 내려가 버리셔서,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친구 집에 아마도 중2 2학기쯤부터 하숙을 하게 되었다. 문제가 생긴 것이 처음 일 년은 하숙비가 부쳐지다가 감감무소식이 된 것이었다. 그 즈음 친구 아버님은 은행지점장을 하시다가 태양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시고, 신당동 적산 가옥을 내부는 손을 안대고 외벽에만 돌을 붙이는, 요즈음 말로 리노베이션을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인지 내게 노골적인 눈치는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유명한 증권 파동이 1963년 2월에 벌어져 친구부모님 두 분은 잠적하시고, 6남매중 위로 세분 누님들은 결혼과 직장 때문에 집에 계시지 않았고, 아래로 남자 3형제와 나와 가사도우미만 집에 있게 되었다. 우리보다 3년 위이고 대학교 1학년인 형이, 이른바 과외공부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으로 몇 달 버티는 와중에 나는 또 염치불구하고 얹혀살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친구의 제의에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따라나섰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그 집이 2번 이사를 갈 때 무슨 연유인지 내 친구는 자리를 지키지 않았으나, 나는 아들 노릇을 단단히 하였다. 그리하여 두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 아닌 아들 노릇을 집사람이 뭐라고 할 정도로 내 딴에는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다. 정릉 아버님(친구 부친)은 앞서 얘기한대로 부침이 심하셨지만, 그이후로도 몇 번의 굴곡이 있었는데 90년대 초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강원도로 피신을 하셨다. 내 부모님은 망해 먹을 재산도 없으니 이런 꼴을 자식들에게 보일 일도 없다고 좋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정릉 아버님의 경우는 어쨌든 부침 면에서는 유별나셨다. 처음에는 오대산 입구 쪽에 계시다가 나중에는 현리 쪽으로 옮기셨는데, 1993년 11월 용문에서의 제자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로 들려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 때 청평 검문소에서 현리 쪽으로 들어가면서 30년 전 추억과 접합을 시켜 보려 했으나, 옛날에 지나갔을 것이다 정도로 연결되지 않았다. 하여튼 무슨 인연인지 현리 쪽을 가게 되었고,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써 치매가 심했던 정릉 모친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러나 그날은 누구나 돌아가시기 전에 반짝한다고 나를 또렷하게 알아보셔서 장례 때 더욱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 그 운악산과의 인연은 2004년 6월 19일 토요일 법인 직원들과의 등산이었다. 승용차로 포천 쪽으로 해서 갔는데, 등산 후 현등사로 내려와 보니 63년에 왔던 산이 운악산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아직 환갑 전이어서 그랬는지 젊은 남녀 직원 넷씩 여덟 명과 병풍바위로 해서 정상인 서봉까지 2시간 반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2시간 하산하여 내려온 기록이 있다.
얘기가 두서가 없어지지만 이번 달 첫 토요일인 7월 1일에 韓建山이 운악산 등산을 하였다. 8시 반에 상봉역에서 만나 전철로 대성리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현등사 입구로 갔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버스를 40분이나 기다리다 보니 11시가 지나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날씨도 무덥고 일찍 지쳐서 동년배인 조사장과 절 고개 밑의 코끼리 바위까지만 올라 갔는데도 2시간이나 걸렸다. 정상을 밟고 온 일행과 같이 12명이서 간식을 먹고 2시간 만에 내려와 주문해 놓은 닭백숙을 먹은 후, 5시 출발 버스를 타고 청평까지 나와서 이후 지하철로 집에 오니 7시 반이었다. 현등사를 중심으로 2004년은 오른쪽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왔고 이번은 왼쪽으로 시계방향으로 올라갔다가 되돌아 온 셈이다. 운악산의 위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접근하기에는 불편한 곳이었다. 그날 같이 간 일행들에게 운악산과의 인연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직전 운악산 등산이 2000년대 초라는 것과 올라간 코스와 병풍바위와 정상에서의 약간 내린 비만 기억이 나지, 누구랑 언제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궁금해져 버렸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여러 사람들을 닦달을 한 결과, 어제, 전에 법인에서 같이 근무한 그 당시로는 신입직원이었던 봉과장이 보내준 사진과 2004년 5, 6월경이었던 같다는 그의 말이 실마리가 되어 수첩을 뒤져 보니, 날짜와 간략한 일정이 적혀 있었다.
이로서 네 번에 걸친 현리와 운악산과의 인연을 훑어 본 셈이다.
2017년 7월 18일 놀이방에서 편 종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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