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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17구간(육십령-깃대봉-영취산)산행후기 #4
서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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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005.02.18 |
|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서상면(西上面)과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계내면(溪內面)의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734m. 《동국여지승람》 《경상도지리지》에는 육십현(六十峴), 《대동여지도》에는 육복치(六卜峙)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이 고개를 넘으면서 60명 이상의 도둑을 만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육십령은 덕유산과 백운산과의 안부(鞍部)에 있으며, 동사면에는 남강 최상류 계곡과 통하고, 서사면에는 금강의 최상류 계곡과 이어진다. 이 두 사면을 흐르는 하천은 많은 침식분지를 만들어 동쪽엔 함양·안의(安義)·도천(道川), 서쪽엔 장계(長溪)·명덕(明德) 등의 산간분지를 형성하였다. 육십령은 신라 때부터 개통된 고개로서, 거창(居昌)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북부지방과 진안(鎭安)을 거쳐 전주(全州)에 이르는 전라북도 동부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남덕유가 육십령을 향해 바짝 다가서며 밀어 올린 봉우리는 할미봉(해발 1026m)이다. 할미봉 산허리를 감아 오르며 호남과 영남 내륙을 잇는 오작교, 육십령 길은 시작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풀기를, “신라적부터 요지였으니, 행인이 이 곳에 이르면 늘 도적에게 약탈당하므로 반드시 60명이 되어야만 지나가곤 했는데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고 하였다. 신라적부터 요지라는 말은 육십령 고갯길에 흔하게 걸린 고성(古城)들이 증명한다. 논개 생가 들머리의 오동산성과 할미봉의 육십령성, 그리고 재 너머 서상면에는 방지산성이 아직도 뚜렷한 흔적으로 남았다. 육십령의 이름 내력으로는 고갯길 60구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고, 경상도를 따르는 육십령 마을의 촌로들은 안의현에서 부터 60리 밖의 고개라는 뜻으로도 푼다. 그러나 오래 묵은 옛글이 이미 분명히 새겼으니 ‘60명이 모여 넘는 고개’라 는 종래의 내력을 올곧게 믿어도 좋을 듯 싶다. 육십령은 북쪽의 추풍령이나 남쪽의 팔량치처럼 나라에서 관리하던 고개는 아니었지만 가령, 옥구의 소금이 전주를 지나 영남 내륙으로 들어가던 길목이었고 보면 그만한 이야기쯤은 족히 품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한 험준한 고성들은 세상을 등진 산적들의 소굴로는 더없이 안성맞춤했을 터이다. 육십령은 대진고속도로의 장수I.C를 나와 교통파출소가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의 거창방면국도(26번)를 따라가면 된다. 고갯마루에는 넓은 주차장과 함께 식당과 팔각정이 있다. 2)무령고개: 장계(長溪)는 장수 북쪽 20리 어름의 작은 면소재지다. 아득한 옛날에는 되레 장수를 거느리던 때도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내내 장수를 뒤따르던 손바닥 만한 산현(山縣)이었다. 장계를 중심으로 전주, 진안(호남)과 안의, 거창(영남)을 잇는 육십령 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부산하고, 한편으로 대전에서 진주로 뚫린 고속 국도가 개통되어 이즈음은 오가는 차들이 곱절로 늘었다. 장계 땅은 호남 좌도 농악의 이름 난 상쇠들이 많이 살았고, 판소리 동편제의 명창이 또한 흔한 곳이었다. ***계속 보시려면 산행후기 #5를 보시길 바랍니다.*** |